서론
에녹은 야렛이 162세에 낳은 아들로(창5:18), 아담 이후 622년에 출생했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365세(아담 이후 987년)에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 승천하였습니다(창5:21-24, 히11:5-6, 유14-15).
에녹은 아담과 308년을 함께 했습니다. 노아는 에녹 승천 이후 69년에 출생하였으므로 에녹과 노아는 이 땅에서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담 이후 1056(노아의 출생) - 987(에녹의 승천) = 69년
‘에녹’은 히브리어로 ‘하노크’로서 이것은 ‘봉헌하다’의 명사형으로 가장 일반적인 뜻은 ‘봉헌된 자, 바침’입니다. 또한 ‘감화시키다’, ‘가르치다’라는 뜻의 ‘하나크’에서 유래하여 ‘선생’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야렛은 아들을 낳고 그의 경건한 삶의 결실로 이 아들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겠다 하여 아들의 이름을 ‘바침(봉헌)’의 뜻을 가진 ‘에녹’이라고 지었던 것 같습니다.
에녹은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에녹은 그 이름 뜻에 비추어 볼 때,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희생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쳐진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요1:29, 고전5:7).
지금까지 족보에는 죽음이 당연한 듯 모두 “죽었더라”로 도장을 찍으면서 한 장 한 장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창세기 5장에는 “죽었더라”가 8회 등장합니다(창5:5,8,11,14,17,20,27,31). 그런데 죽음의 그의 생을 이기지 못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담의 7대손 ‘에녹’입니다. 그는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샛별같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영생불사함으로 경건한 삶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참으로 죽음을 뛰어 넘은 신비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최대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에녹이 이 땅에서 행한 행적은 단 한 번 기록되고 있는데(유14-15), 당시 팽배했던 ‘경건치 않은 일’과 주께 거스려 했던 모든 ‘경건치 않은 말’에 대하여 심판을 예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그의 아버지 야렛의 기대대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선지자・예언자로서 하나님께 바쳐진 생애로 살았던 것입니다.
본론
1. 에녹은 인류에게 중대한 교훈을 가르쳐 준 선생이었습니다.
에녹은 ‘바침(봉헌)’ 이외에도 ‘신임자, 시작, (가르치는)스승’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에녹이 담당했던 사명을 토대로 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의 신임을 받은 자입니다(히11:5).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영생한다는 진리를 처음으로 가르쳐 준 전 인류의 선생입니다(창5:21-24).
에녹이 인류에게 가르쳐 준 중대한 교훈은 죽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변화 승천’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은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이 말은 에녹이 죽은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데려가시므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카흐’로서 그 뜻은 ‘이 세상과는 다른 장소’ 곧 ‘하나님의 나라로 산 채로 옮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지상에서 생존하던 에녹을 죽음을 거치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이끌어 옮기셨다는 것입니다(히11:5).
에녹 외에 생존한 상태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승천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엘리야입니다. ‘라카흐’라는 단어가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던 기사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왕하2:10-11). ‘라카흐’는 실로 인간이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죽음이라는 장벽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무릎을 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다면 에녹이 신령한 몸으로 승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창세기5:24절의 ‘동행’을 뜻하는 히브리어 ‘이트할레크’는 ‘걷다’라는 히브리어 동사(할라크)의 재귀동사로서 “자기 자신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예속시켜서 뒤를 따라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뜻을 두고 볼 때, 동행은 함께 가는 것은 물론이며,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그분의 뜻을 따라 철저히 한 걸음씩 옮겨 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동행은 몸만 다를 뿐 한 사람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과연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품고, 300년간 일편단심 변함없이 걸었습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계속해서 하나님만 따라 걸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으며 죽지 않고 살아 승천의 영광을 누리게 한 것입니다(히11:5). 우리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손을 잡고 늘 함께 하여 온전히 동행할 때 능히 죽음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할 수 있는가?’를 묻기 이전에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동행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동행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라크’가 신명기30:16절에서는 생명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동행 속에는 죽음의 역사에서 생명의 역사로 나아가는 비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성경은 하나님과의 화해,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면 죄의 극복과 죽음으로부터의 해방과 영생이 있음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3. 에녹은 아담과 308년을 함께 살았으며, 아담이 930세에 죽고 난 후 57년 후에 승천하였습니다.
계산> 아담 이후 987(에녹이 승천한 해) - 930(아담이 죽은 해) = 57년
에녹의 승천은 아담 타락 이후 잊혀져 가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 곧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하는 영생의 빛, 불멸의 빛을 환하게 밟혀준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로 에녹은 생명이 사망을 이기는 일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로써 죄와 사망의 그늘 속에서 신음하며 영생의 소식에 목말라 하고 있던 당시 의로운 백성들에게 넘치는 용기와 소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이후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다시 에덴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받은 상태였으므로(창3:15), 에덴 동산에 있었던 장본인으로서 모든 후손들에게 복락의 세계였던 에덴 동산의 실재와 인류의 숙원 과제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증거했을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죄 짓기 전과 죄 지은 후의 상황도 자세히 증거했을 것입니다. 아담의 신앙적 소원은 마침내 에녹을 통해 그대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자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에녹만이 죽지 않고 살아 승천하므로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것은 에녹이 아담과 308년을 지내면서 아담이 전수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아담의 후손 가운데 에녹 한 사람만이 그것을 온전히 좇아갔습니다. 그 결과 에녹은 300년간이나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마침내 더 이상 세상에 둘 필요가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 데려 가신 것입니다.
아담 타락한 이후 에녹도 예외 없이 불과 57년 전에 죽었던 아담을 따라 죽어야 함이 마땅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그의 죽음을 초월하도록 하여 바로 영생의 세계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에녹은 불경건이 극에 달한 시대에 경건한 삶의 최후가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보여준 것입니다. <에녹 2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