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창 5:3-8) 아담이 일 백 삽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십 삼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러 셋은 일백 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 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아담 이후 130년에 출생하였습니다. 그는 105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807년을 즤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912세(아담 이후 1042년)에 죽었습니다(창 5:6-8). 셋은 아담과 800년을 함께 지냈고, 857세에 에녹의 승천을 목격했습니다.
아담의 둘째 아들은 아벨이었습니다(창 4:2). 아벨은 히브리어로 ‘헤벨’로서, 뜻은 ‘허무, 공허, 숨(입김)’입니다. 그의 생이 갑자기 끝나게 될 운명임을 부지중에 암시하는 것입니다. 본래 자녀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 주려 함이 부모의 본성임에도 아담은 그의 둘째 아들을 ‘아벨’이라 하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손상된 인간 존재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첫 조상 아담이 경험했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첫 아들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여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가 가졌던 새로운 생명에 대한 소망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갔습니다(창 4:16).
[창 4: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이때 아담과 하와는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아벨이 형 가인의 손에 처참하게 죽은 지 얼마 못되어 큰 아들 가인마저 신앙의 길을 버리고 떠났으니 두 아들을 동시에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야곱이 가장 마음에 두고 사랑했던 자식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래도록 이들을 위하여 애통하고, 열 자식들의 위로가 헛되었으며 ‘아들에게로 가리라’ 소리치며 울었던 것이 생각납니다(창37:34-35).
[창 37:34-35]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참으로 극심한 슬픔과 절망이 아담 가정을 어둡게 드리우고 있을 대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로서 셋을 주어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의 나이 130세에 낳은 셋은 아벨 대신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고, 넘치는 소망과 위로의 선물이었습니다.
본론
1. 셋은 아담의 모양, 형상과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창 5:3]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자기 모양,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창5:3 말씀에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하나님의 형상을 셋 계열에서 잇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담의 형상을 가진 아들은 가인이 아니라 ‘셋’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셋 계열에 주어졌지, 가인 계열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타락에도 불구하고 아담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생명, 기본적인 하나님의 형상이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셋에게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은 인간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 위에 확립되는 것입니다(창 9:6, 약 3:9). 인간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은 비록 온전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계속 이어졌던 것입니다.
[창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약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2. 셋은 하나님이 주신 ‘다른 씨’였습니다(창 4:25).
[창 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가인의 후손들이 계속적으로 살인과 거짓으로 온 세상을 어둡게 하는 동안, 아담은 하나님이 구속사적 목적 가운데 ‘다른 씨’를 주셨음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습니다. 아담은 셋 계열을 통해 기필코 약속하신 만인간의 구세주가 오시는 길이 열릴 것을 염원하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뼈아픈 눈물과 슬픔 속에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아담 가정이 셋으로 말미암아 재건된 것은, ‘다른 씨’를 주어서라도 반드시 여자의 후손이 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의 흔적입니다. 이렇게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멈추지 않고 흘러 흘러 마침내 마리아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요셉의 씨가 아니고 성령으로 잉태된 ‘다른 씨’였습니다(마 1:18-20). 참으로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머리로는 감히 생각하거나 계산할 수도 없는 크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마 1:18-20]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3. 셋은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굳게 하기를 소망하는 이름입니다.
셋은 ‘다른 씨’라는 의미 외에도 ‘고정된 자’, ‘기초’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속사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 받은 셋이 믿음에 굳게 서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실 길을 요지부동하게 굳건히 고정시켜 주시를 소원한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오직 반석 되신 예수님 말씀의 터 위에 세워져야 무너지지 않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마 16:18, 7:24-27). 셋 계통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터 위에서 말세의 지상 교회가 견고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마 16: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7:24-27]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4. 셋은 아담의 죽음을 목격했고, 그 이후 에녹이 승천하는 것을 목겼습니다.
연대적으로 셋은 아담이 죽은 이후 112년 만에 죽었습니다. 또 에녹이 승천한 것을 목격한 이후 55년 만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셋이 죽고 14년 만에 구원자의 예표인 노아(아담의 10대손)가 출생했습니다.
(계산)
셋이 죽은 해(아담 이후1042) - 아담이 죽은 해(930) = 112년
셋이 죽은 해(아담 이후1042) - 에녹이 승천한 해(987) = 55년
노아가 출생한 해(아담 이후1056) - 셋이 죽은 해(1042) = 14년
결론
셋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쉬트’로서 이것은 ‘세우다, 고정시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벨은 그 이름처럼 허무하게 수를 다하지 못한 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셋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제 위치로 세워지고 뿌리를 내리기를 소원한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