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아담
사람, 인류, 인간
서론
인류의 시조 아담은 130세에 셋을 낳았고,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930세에 죽었습니다(창5:3-5).
아담의 어원은 앗수르어의 ‘아다무’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뜻은 ‘만들다, 생기다’입니다. 사람은 결코 조물주가 아니며 ‘창조물,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흙으로 지어졌습니다(창2:7, 3:19,23). 흙은 히브리어로 ‘아파르’로서 진흙이 아닌 ‘먼지, 티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없는 사람의 존재 근원은 흙먼지에 불과할 뿐입니다(창18:27, 욥4:19, 33:6, 시103:14, 전3:20, 사64:8, 고전15:47).
본론
1. 아담은 9대손 라멕의 나이 56세까지 생존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한 이후, 타락하기 전 세계와 하나님을 가까이 모셨던 복된 생활을 기억하고 자손들에게 에덴 동산의 실재와 그곳에서의 귀한 신앙체험을 상세히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 2대 셋부터 9대 라멕까지는 에덴 동산의 주인공이었던 아담을 만나 그로부터 창조 본연의 영생의 세계와 사단의 교묘한 속임수, 불순종으로 인한 자신의 타락, 구원의 약속을 직접 들었습니다.
아담은 에덴에 있었던 장본인으로서 여자의 후손에 관한 확실한 복음을 받고(창3:15), 후손들에게 계속적으로 그 복음을 증거하였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 복음은 아담과 전 인류에게 한가닥 희망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아담은 그 약속을 받고 여자의 후손이 올 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최초의 약속 직후에(창3:15) 하나님이 주신 아내의 이름을 하와(=생명, 창3:20)라고 지은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하와가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는 후손에 대한 약속을 믿고 생명으로 사망을 정복하는 영생의 날을 소망한 최초의 신앙고백입니다. 이렇듯 아담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아 ‘하와’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아담은 아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담은 이렇게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장본인으로서, 에덴동산의 실재와 거기서 주신 약속에 대한 확실한 증거자였습니다. 또한 에덴에서 추방되기 전 하나님이 직접 입혀 주셨던 가죽옷(창3:21)은 창세기3:15절의 언약을 보증해 주는 증표였습니다. 이는 아담에게 있어 자기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은 희생을 통한 구원의 원리를 보여준 것이며, 앞으로 타락한 인류의 구속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암시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죽옷을 마련하기 이해서는 반드시 한 생명의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장차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합니다.
아담은 약속의 보장으로 주신 가죽옷을 평생 간직하면서 약속의 후손이 오셔서 반드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날이 오리라 확신했고, 그것을 그 자손들에게 철두철미하게 교육하고 전수하였을 것입니다.
2. 에덴에서 있었던 영화로운 체험들을 증거하였습니다.
①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던 세계임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창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아담과 하와가 타락 전에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 죄에 대하여 눈이 뜨인 순간 자신이 벗은 줄을 알고 부끄러워 숨으며,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렸습니다(창3:7). 창세기3:10절에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벗음으로 인한 수치감은 두려움을 주었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게 만들었습니다.
이 수치와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히 체험했던 아담은 그 후손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던 그 세계를 가슴 깊이 새겨주었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과 평강과 사랑 때문에 아무런 허물도 눈치도 죄책감도 없었습니다. 아담이 어찌 그 세계를 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② 에덴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대화를 나누었던 일을 들려 주었을 것입니다(창2:15-16, 3:9,10,11,17). 이처럼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대화를 나누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은 말 그대로 기쁨의 동산이요 복락의 동산입니다(시36:8). 그러나 죄를 짓고 난 후부터는 하나님의 음성은 두려움과 고통이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에 평소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고 말았습니다. 결국에는 기쁨의 동산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창3:23).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던 추억이 있던 아담은 에덴동산의 회복을 열망하면서, 그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수없이 증거하였을 것입니다.
③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만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었던 일을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창조된 아담은 대단한 지혜와 창조력을 가졌습니다. 수천 수만 종의 동물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결코 인간의 지혜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 왕이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하는’(왕상4:32-34) 지혜를 가진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아담이 명명식을 할 때, 그는 하나님이 주신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만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이후 아름다운 지혜는 사라지고 만물에 대한 권위와 영향력도 사라졌습니다. 자신의 몸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체험한 아담은 그것을 자손들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3. 아담은 에녹의 승천 57년 전에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계산: 아담 이후 987(에녹의 승천) - 930(아담의 죽음) = 57년
아담은 에녹과 308년을 지냈으나 에녹의 승천을 목격하지 못하고, 에녹의 승천 57년 전에 죽었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기 전까지 65년 동안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였고, 므두셀라를 낳은 65세부터 시작하여 365세까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창5:21-24). 그러므로 아담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243년 동안 목격한 것입니다. 그는 에녹에게 죄 짓기 전의 에덴동산에서의 삶과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담의 메시지는 그의 7대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 이후에 승천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아담은 930년을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창세기5:5절에서 아담의 죽음을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죽었더라”는 히브리어로 ‘무트’인데, 이 단어는 ‘자연사’를 뜻합니다. 이것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타살 이후 성경에 나오는 자연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이 ‘무트’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처음 기록된 곳은 창세기2:17절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엄중하게 경고를 하셨습니다. 이제 이 경고가 아담의 죽음을 통하여 바야흐로 역사적인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직접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으로 만드신 아담의 생명조차 소멸시키신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조 진조(眞祖: "하나님의 참된 조상" )라는 표현은 직역적으로 "하나님의 참된 조상" 가 얼마나 큰 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의 죽음은 오고 오는 모든 아담의 후예들의 죽음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입니다(롬5:12).
이러한 아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손을 통하여 생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5장에 28번이나 등장하는 ‘낳았고’, ‘낳은 후, ‘낳았으며’, ‘낳아’, ‘낳았더라’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얄라드’라는 단어를 통하여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죄로 인한 죽음의 저주 속에서도 이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길고 긴 생명의 구속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크신 은총과 사랑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승화시켜 나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