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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편에 선 죄악의 후예들 - 니므롯과 바벨탑 건축의 후예들굿모닝 로고스 2024. 11. 29. 00:28반응형
가인의 편에 선 죄악의 후예들
니므롯과 바벨탑 건축의 후예들
[창 10:8-9]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서론
가인의 족보는 아담의 7대손 라멕의 이르러 그 문명의 화려함을 뽐내고는 순식간에 머춰 서고 맙니다. 셋 계열의 족보가 노아와 아브라함을 넘어 다윗에서 메시야까지로 이어지며 계속적으로 족보를 이어 오고 있는 반면에, 가인의 후예에 대한 기록은 사실상 7대손 라멕에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제로 가인의 후예가 라멕에게서 단절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연히 라멕의 세 아들을 통해 많은 자손이 번식되어 나름대로 큰 민족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라멕에게서 가인의 족보를 중단한 것은,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번창해 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문명, 하나님의 이름이 없는 삶은 최고의 절정기에서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경고해 주고자 함입니다.
성경은 가인의 육신적인 족보가 라멕에게서 중단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가인의 죄악 된 속성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종말의 때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바벨탑을 쌓았던 노아의 세 아들 중 함의 자손 니므롯이나,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 그리고 이삭의 아들 에서로 이어지는 족보입니다.
본론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의 후예들은 문명의 개척자들이었습니다. 아담의 7대손 라멕의 세 아들이 각 방면의 목축업과 음악과 기계 문명의 창시자가 되었다면, 마찬가지로 노아의 세 아들 중 함의 손자 니므롯은 특이한 사냥꾼이자 세상의 영걸로, 가인이나 라멕에 버금가는 사람입니다(창 10:8-9).
1. 세상의 영걸 니므롯
창세기 10장에서 니므롯에 대한 설명은 ① 세상에 처음 영걸, ②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 ③ 바벨의 시조로 기록돼 있습니다. 함의 족보를 언급하다가 니므롯에 이르러 그의 사적을 상세하게 기록함을 볼 때, 니므롯에 대해 주목하기를 원하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니므롯은 ‘영걸’이었습니다.
‘영걸’은 그 한자가 ‘꽃부리 영(英)’, ‘뛰어날 걸(傑)’입니다. 성경 사전에서는, ‘영웅과 호걸로 뛰어난 인물을 말한다. 또는 큰일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용기와 재능, 지혜가 뛰어난 것을 말한다’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니므롯을 가리켜 ‘세상의 영걸’이라고 칭하였으니, 그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영웅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담대하고, 뜻을 방해하는데 재능이 있고, 온갖 거짓으로 영혼을 노략하는 일에 지혜가 탁월한 자를 말합니다.
‘영걸’의 히브리어는 ‘기보르’로서, 이 단어는 통상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 폭군’을 뜻합니다. 니므롯은, 사람들을 압제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데 자신의 힘을 사용한 폭군이며 전제 군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폭력으로 부족들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벨탑을 지음으로써 하나님께 대적한 것입니다.
2) 니므롯은 ‘특이한 사냥꾼’이었습니다.
‘특이한 사냥꾼’이라는 것은 그의 직업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특이하다는 것은 ‘강한 사냥꾼’이란 뜻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탁월한 실력을 가진 사냥꾼이란 뜻입니다. 니므롯이 거한 지역은 비옥한 땅이면서도 들짐승들이 많아 거민들의 안전과 평화에 지속적인 위협이 되었을 것입니다(출 23:29-30, 신 7:22). 니므롯은 이러한 고충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로서 짐승들을 사냥하고 제압하여 유명세를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후 그를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거대한 무리가 생겨났고, 그는 거대한 세력(권력)을 가진 소위 ‘영웅’이 되었던 것입니다. 점점 불어나는 거대한 집단의 힘, 그 세력으로 니므롯은 자신을 신격화하였고, 마침내 하나님 자리에 앉아 하나님께 대적하고, 백성들의 영혼을 농락하고 통치하는 힘을 과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니므롯은 백성들의 영혼을 도둑질하여 하나님에게서 돌이키게 하는 적그리스도적 인물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창세기 10:8-9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구스는 또 니므롯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세상에서 최초의 정복자였다.
그는 여호와를 무시하는 힘센 사냥꾼이었으므로 니므롯처럼 여호와를 무시하는
힘센 사냥꾼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게 되었다”(현대인의 성경, 창 10:8-9)
3) 니므롯은 바벨을 건국한 시조가 되었습니다(창 10:10, 11:4).
특이한 사냥꾼 니므롯은 백성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어느새 바벨을 건국한 시조(始祖)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건국한 바벨은 기본적으로 반신론적이요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국가입니다. 가인 계열의 특징처럼 그가 세운 국가는 하나님의 이름은 전혀 없고 사람의 이름만 높이 내세우는 곳입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야욕을 드러내기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여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것입니다.
2. 바벨탑의 건축
니므롯의 인도하에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목적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바벨탑을 쌓으려 했던 목적을 세 가지로 말슴하고 있습니다.
1) 성과 대를 쌓아 그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창 11:4).
여기서 ‘성’과 ‘대’는 ‘지구라트’라고 하는데, 이것은 피라미드처럼 삼각형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중앙에 계단을 만들어 꼭대기에 오르게 하며 그 위에는 조그만 사당을 갖추고 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하늘을 찌르는 종교적인 건물을 세운 것은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세력을 결합하여 대제국을 건설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안전하고 강대한 통일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 바벨탑 건축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대홍수 심판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극도의 불만을 표출한 것입니다. 다시는 물로 심판하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곧 무지개 언약을 무시한 것입니다(창 9:8-17).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대비하려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교만한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가인이 하나님께서 주신 보호의 표를 무시하고, 여호와 앞을 떠나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고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 부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창 4:15-17). 그 모든 부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하고 어두운 마귀의 세력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단 세상에서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성경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한 마음, 한 뜻을 강조하며 어둠의 무리가 하나로 뭉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일치단결,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모임, 그 뒤에 남는 것은 피차간의 분쟁과 상처, 허무와 후회뿐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빠진 세력의 연합, 인간의 안락과 편리를 우선한 모임, 그것은 그 시작부터 불법, 불의, 불선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 계획을 무너뜨리고 거역하는 행위입니다.
2) 사람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였습니다(창 11:4).
이들은 가인의 후예들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은 내세우지 않고 자신들의 명예와 이름만 내고자 했던 자들입니다. 과학과 문명의 힘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이름 대신 자신들의 이름을 내어 하나님같이 되려는 인간의 교만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사 14:12-14).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케 하여 온 지면에 이들을 흩으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교만한 도모를 깨뜨리셨습니다(창 11:7-8).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창세기 3:5절의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는 뱀의 듣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 때문에, 결국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야고보서 4:6절을 볼 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3)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창 11:4).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거스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당을 정복하라”(창 1:28)고 하셨고, 이와 동일하게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창 9:1, 7)고 축복하셨습니다. 이 창조 명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번성함으로 세상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니므롯은 자기 백성들을 동원하여 바벨탑을 쌓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선동하며, 한 곳에 집단적으로 정착하기를 꾀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목표를 한꺼번에 무너뜨리셨습니다. 창세기 11:8-9절에서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 쌓는 것을 그치게 하고 온 지면에 흩으신 방법은 언어의 혼잡이었습니다. 언어는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 그 이상입니다. 언어의 통일성은 사상과 생활 방식의 일치를 의미하지만, 언어의 혼잡은 사상의 불일치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모든 생활 방식의 혼란을 초래합니다. 언어의 혼잡은 즉시 바벨탑 공사의 중단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주는 교훈은, 인간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제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거액의 투자, 수많은 인력을 동원한 공사를 통해 위대한 꿈을 실현한다 할지라도, 그 결국은 말 하나의 발음만 달라져도 서로 못 알아듣고 공사를 중단한 채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어리석은 인생들을 향하여 선포하기를,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브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사 48:13)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6-10절에서 불임했던 한나는 사무엘을 낳은 이후 천지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그 마지막에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는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10절)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결론
이 세상은 악을 도모하는 일에는 재빠르게 하나가 되고, 그 추진력이 강하며, 그 꿈도 거창합니다. 과연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인간을 중심하여 인간의 능력을 우선시하는 바벨과 같은 계획, 바벨과 같은 수단, 바벨과 같은 목표는 없습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속에서 선하신 목적을 위해 부르심 받은 자들입니다. 위에서 부르신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시기를 바랍니다(엡 4:1).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그 경영하는 바가 합력하여 반드시 선한 뜻을 이루게 됩니다(롬 8:28). ‘복음에 합당한 생활’, ‘복음을 위하여 협력하는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빌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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