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앞에서 간사함이 없는 사람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
들어가는 말: 예수님은 왜 나다나엘의 정직함을 칭찬하셨을까?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처음 만나신 장면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나다나엘은 이전에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시고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
나다나엘은 놀라서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요 1:48).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기 전에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8).
그러자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초월적인 지식 앞에서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요 1:49).
이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의 지식이나 능력, 사회적 지위를 칭찬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보신 것은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여기서 “간사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돌로스(δόλος)이며, 속임수, 교활함, 기만을 의미합니다(요 1:47).
그러므로 “간사함이 없다”는 말씀은 단순히 나다나엘이 거짓말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뜻을 넘어, 그의 마음과 행동에 이중적인 속임이 없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빌립에게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고 들었을 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요 1:46). 편견이 없었던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겉으로는 예수님을 칭찬하면서 속으로 의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직접 만난 후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닫자 즉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요 1:49).
이것이 정직한 사람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항상 옳은 사람이 아니라, 진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1. 성경은 진리와 거짓의 싸움을 보여 줍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진리와 사탄의 거짓 사이의 충돌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요 17:17),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민 23:19, 딛 1:2).
그러나 사탄의 가장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거짓을 진리처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창 3:1-5).
이 싸움은 성경의 첫 부분인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첫 번째 거짓말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뱀은 하와에게 전혀 다른 말을 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하나님은 “죽는다”고 말씀하셨고 뱀은 “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둘 가운데 하나는 거짓입니다.
뱀은 계속해서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유혹했습니다(창 3:5).
여기에는 거짓의 전형적인 구조가 나타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합니다(창 3:1).
둘째, 하나님의 명령이 인간을 억압하는 것처럼 왜곡합니다(창 3:4-5).
셋째, 인간의 욕망을 자극합니다(창 3:6).
하와가 그 나무를 바라보았을 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창 3:6).
결국 인간의 탐욕과 뱀의 거짓이 만나 불순종이 시작되었습니다(창 3:6).
죄의 역사는 단순히 규칙 하나를 어긴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보다 거짓을 신뢰한 사건이었습니다.
3. 왜 세례 요한은 종교지도자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 불렀을까?
세례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
이어 그는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요구했습니다(마 3:8).
중요한 것은 세례 요한이 그들의 존재 자체를 무조건 저주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경건한 종교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삶에는 회개의 열매가 없다는 사실을 책망한 것입니다(마 3:8-10).
예수님께서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매우 강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마태복음 23장을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강하게 책망하신 죄 가운데 하나가 외식이었음을 발견합니다(마 23:13, 23, 27-28).
겉과 속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경건해 보였지만 마음에는 탐욕과 교만이 있었고,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마 23:5, 25-28).
따라서 나다나엘에게 “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신 장면과 바리새인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신 장면은 매우 대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겉모습보다 마음의 진실함입니다(삼상 16:7).
4. 거짓은 결국 관계를 파괴합니다
거짓말이 심각한 이유는 단순히 사실 하나를 틀리게 전달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거짓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도 관계의 파괴였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했고(창 3:7), 하나님을 피해 숨었으며(창 3:8),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습니다(창 3:12-13).
거짓과 죄는 사람을 숨게 만듭니다.
반대로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여기에서 “자유롭게 하다”는 헬라어 엘류데로오(ἐλευθερόω)로, 속박에서 해방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유는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아닙니다.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자유입니다(요 8:34-36, 롬 6:18).
정직은 자유를 가져오지만 거짓은 계속해서 또 다른 거짓을 필요로 합니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거짓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 않고 오히려 속박합니다.
5. 마지막 때에는 거짓과 미혹을 더욱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거짓과 미혹을 반복해서 경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24).
사도 요한도 모든 영을 무조건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시험하라고 권면했습니다(요일 4:1).
요한계시록은 사탄을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표현합니다(계 12:9).
또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영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장면도 등장합니다(계 16:13-14).
바울 역시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딤전 4:1).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거짓말하는 자들의 외식”이며, 그들의 양심은 화인을 맞은 것처럼 둔감해진다고 말씀합니다(딤전 4:2).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반복하면 양심이 무뎌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고 마음이 불편하지만 반복하다 보면 점점 아무렇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작은 거짓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6.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민 23:19).
바울은 하나님을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딛 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 14:6).
성령도 “진리의 영”이라고 불립니다(요 16:13).
그러므로 성도가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성품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엡 5:1).
7. 성경이 말하는 정직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
성경은 정직한 삶에 대해 매우 많은 말씀을 합니다.
1) 하나님은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84:11)
정직한 삶이 언제나 당장 물질적 성공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의 삶을 기뻐하시고 필요한 은혜를 공급하십니다(시 84:11).
2) 정직한 사람에게는 빛과 기쁨이 있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셨도다.”(시 97:11)
거짓은 끊임없는 불안을 만들어 냅니다.
언젠가 드러날까 두려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직은 마음에 평안과 자유를 줍니다.
3)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 가운데 빛이 일어납니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시 112:4)
정직하게 살아도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흑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시 112:4).
4) 하나님은 정직한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잠 2:7)
정직하면 때로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정직은 삶을 지키는 방패가 됩니다(잠 2:7).
5) 하나님은 정직한 자와 가까이 교제하십니다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잠 3:32)
정직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과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나아가는 사람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릴 수 있습니다(요일 1:9).
8. 정직은 완벽함이 아니라 진실함입니다
우리는 정직한 사람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정직한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다나엘도 편견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진실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요 1:46-49).
다윗 역시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가 드러났을 때 끝까지 숨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정직의 중요한 본질이 있습니다.
9. 다윗이 자신의 죄를 숨기려 했을 때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했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삼하 11:2-17).
처음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삼하 12:1).
나단은 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한 마리뿐인 어린 양을 빼앗은 비유를 통해 다윗의 죄를 드러냈습니다(삼하 12:1-7).
그리고 나단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
이 순간 다윗에게는 여러 선택이 가능했습니다.
왕의 권력을 이용해 나단을 침묵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을 부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짧지만 매우 중요한 고백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죄를 범했다”고 고백했습니다.
10. 시편 51편: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의 회개를 가장 깊이 보여 주는 말씀이 시편 51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여기서 다윗은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만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 자체가 새로워지기를 구합니다.
죄의 행동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변화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의 뿌리가 외부 환경만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정직한 회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저 사람이 잘못했다”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절망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새로운 마음을 창조해 주실 것을 구했습니다(시 51:10).
성도에게 필요한 것도 이런 기도입니다.
11.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때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합니다.
비난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자신을 더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 과장합니다.
때로는 이익을 얻기 위해 사실을 숨깁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자신의 모습을 꾸밉니다.
결국 많은 거짓의 뿌리에는 두려움, 욕심, 교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직은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자기 보호를 위해 거짓말할 필요가 줄어듭니다(시 56:3-4).
하나님이 나의 가치를 아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과장할 필요도 없습니다(갈 1:10).
12. 오늘날 성도가 실천해야 할 정직
오늘의 사회에서 정직은 더욱 중요한 신앙의 덕목입니다.
첫째, 말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아야 합니다(엡 4:25).
둘째, 돈과 거래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성경은 속이는 저울과 불공정한 거래를 미워한다고 말씀합니다(잠 11:1).
셋째, 가정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숨기고 속이는 삶은 관계를 무너뜨립니다(골 3:9).
넷째, 교회 안에서도 정직해야 합니다.
경건해 보이기 위해 자신의 영적 상태를 꾸미는 것은 바리새인의 외식과 같은 위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마 6:1, 5).
다섯째,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는 쉽게 보면서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지 않아야 합니다(마 7:3-5).
13. 정직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신앙의 정직은 결국 “누가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사람이 보지 않으면 속여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기준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고 믿는다면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모든 길을 익히 아신다고 고백합니다(시 139:1-4).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았지만 예수님은 그를 알고 계셨습니다(요 1:48).
이 사실은 두려움이 아니라 위로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내 진심을 몰라줄 때에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들에게 오해받을 때에도 하나님은 마음을 아십니다.
따라서 정직한 사람은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잠 5:21).
결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처음 보시면서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7).
나다나엘의 위대함은 완벽함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이 진실을 향해 열려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반대로 성경은 거짓이 사탄의 중요한 속성이라고 말씀합니다(요 8:44). 에덴동산에서부터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인간을 미혹했습니다(창 3:1-5).
마지막 때에도 성도는 거짓과 미혹을 분별해야 합니다(마 24:24, 요일 4:1).
그러므로 정직은 단순한 사회적 미덕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며(딛 1:2),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시고(요 14:6),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요 16:13).
그 하나님을 믿는 성도도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힘만으로 완전하게 정직할 수 없습니다.
다윗처럼 자신의 죄를 숨기고 싶을 때도 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핑계를 만들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다윗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이 기도는 단순히 “앞으로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결심보다 깊습니다.
“하나님, 나의 마음 자체를 새롭게 해 주십시오.”
“죄를 합리화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과 하나님 앞의 모습이 다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잘못했을 때 변명하지 않고 인정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정직한 신앙인의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숨지 않는 마음입니다.
나다나엘처럼 간사함이 없는 마음, 다윗처럼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마음, 그리고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히 4:13).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주님, 제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고, 진리를 사랑하며, 말과 행동과 마음이 하나 되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시 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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