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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의 역사와 의미(추수꾼의 사명)굿모닝 로고스 2024. 10. 11. 15:54반응형
[마 9:35-38]
(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서론
오늘날 한국교회는 11월 셋째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기념하여 감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추수감사절에 대한 성경적 의미와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알아보고 오늘날 드려지는 추수감사절을 의미 있게 드렸으면 한다. 추수감사절이 역사와 의미를 살펴보겠다.
본론
1. 미국에서 시작된 추수감사절의 역사와 의미
1) 미국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로 명절을 보낸다.
1620년 종교박해를 피해 영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1621년, 미국에서 첫 수확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유래를 가진 날이다. 미국에서 이날이 뜻깊은 이유는 그들의 영국을 떠나온 이민자들이 비로소 새 땅에 적응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까지 이날은 뉴잉글랜드(미국 북동부 동해안 지역의 6개 주) 전역에서 축제로 자리 잡았고 1863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미국의 공식 국경일로 선포되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인들의 대표적인 명절로 지켜지면서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 곳에 모여 칠면조 등의 요리를 먹으며 즐기는 날로 자리 잡게 되었다.
2) 인디언들에게 도움을 받은 필그림스(Pilgrims)
1620년, 영국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메사추세츠(Massachusetts) 남동 해안 ‘플리머스록’(Plymouth Rock)에 상륙한 첫 이주민들을 역사적으로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 또는 ‘필그림스’(Pilgrims)이라 부른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추위, 굶주림 등으로 그 해 겨울 도착한 인원의 절반(102명 -> 53명)이 사망하게 된다.
그들은 사실 영국의 분리주의자들이다. 영국 성공회를 반대하는 비국교도이며, 영국에서 네덜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1527년 헨리 8세의 혼인무효 문제로 촉발된 교황과의 갈등은 1531년 2월 11일 영국 성직자들이 헨리 8세를 잉글랜드 교회에서의 왕위 지상권을 인정하는 결의를 함으로써 로마 가톨릭교회와는 결별의 길을 걷게 된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헨리 8세를 파문하자, 1533년 앤 볼린과 재혼을 했고, 1534년 수장령을 공포하여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고,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삼았다. 로마와 결별 이후 종교개혁운동이 영국으로 들어와 탄력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성상 파괴, 순례의 폐지, 성인숭배 폐지 등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는 개신교가 아니었으며, 헨리 8세가 신봉하는 믿음도 가톨릭 그 자체였다. 1539년 잉글랜드 교회의 6개 신조에서 영국 교회가 가톨릭교회적인 성격을 유지함을 선언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가 공식적으로 로마 교회에서 분리가 된 것은 1559년이다. 잉글랜드 의회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믿음의 옹호자"(에미리트)로 인식하여 ‘왕위 지상령’을 채택하고, 반대로 개신교적인 법을 폐지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선택한 길은 "중도"(Via Media)라고 불리는 것으로, 잉글랜드에 혼재하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가 서로를 부정하고 배제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을 택한 현실적인 정책이었다. 또한 여왕은 1563년 성직자 회의에서 《영국 성공회 39개조 신앙고백》을 제정, 영국 성공회의 국내화를 강화했다. 이때부터 영국의 청교도와 영국 성공회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함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메사추세츠 플리머록에 도착하여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102명 중 53명만 살아남은 필그림스를 구원하여 준 사람들은 그 근처에 살고 있는 ‘왐파노아그’ 부족이었다. 그들은 언어적으로 알공캥 제족에 속하는 북미 동부 소림지 원주민이다. '왐파노아그'란 메사츄세츠어로 "동쪽 사람" 또는 "새벽 사람"을 의미하고 포카노켓(Pokanoket), 파테에켓 (Patuxet), 나우에트 등 50갈래 부족을 포함, 메사추세츠주 남동부에서 로드아일랜드에 걸쳐 널리 지배하고 있었다. 위그왬이라는 돔형의 오두막에 거처하여 수렵, 어로, 경작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인디언 지파는 처음부터 정착민들에게 개입하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가 어느 날 현재 매인 주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마사소이트 추장을 찾아온 아베나키 부족(Abenaki), 추장 사모세트(Samoset)가 필그림들에게 서투른 영어로 말을 걸어, 식민지의 상황을 시찰하고 다음날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왐파노악 족 티스콴텀(또는 스콴토)을 데리고 돌아왔다. 스콴토는 한때 영국인에게 납치되어 유럽에 노예로 팔렸다가 교육을 받고 자유를 얻고 나서 통역으로 북미 대륙으로 가는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스쿠안토 인디언의 농경과 어업 기술을 전수하고 필그림이 몇 개월 동안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스콴토는 1621년 3월 왐파노악의 마사소이트 추장과 필그림이 평화와 우정의 조약을 맺도록 중재했다.
3) 필립 왕의 전쟁과 학살당한 인디언들
그러나 훗날 이날이 인디언들에게는 매우 슬픈 날이 되었다.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관점으로 보는 역사가 그것이다. 미국 땅은 콜럼버스가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도착한 땅을 인도라고 믿었기에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지칭하여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역사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필그림이 나타날 때까지 과거 수십 년간 왐파노아그 부족은 이웃 미쿠막 부족(Mi'kmaq)과 내러갠셋 족과의 세 차례 걸친 전쟁과 전염병의 유행으로 피폐한 상황에 있었던 마사소이트 추장은 필그림과 동맹이 왐파노아그 부족의 처한 상황을 호전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마사소이트 추장이 필그림과 맺은 조약은 플리머스 식민지를 위해 12,000에이커 (48.5km2)의 토지를 양도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마사소이트가 유럽인의 토지 소유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의심스럽지만, 인디언 부족 간의 경쟁과 전염병으로 왐파노아그 족의 인구 밀도는 몹시 저하되어 있었다. 게다가 마사소이트 땅에 나타난 영국인 수는 많지 않았고, 전년 겨울을 간신히 살아남은 듯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조약이 나중 왐파노아그 부족에게 불이익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해 가을은 일군 농산물이 대풍작이었기 때문에, 필그림은 왐파노아그 부족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그들을 초정했는데, 마사소이트와 왐파노아그 부족 90명은 5마리의 사슴을 들고 정착촌을 방문해 3일 동안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았다. 이것이 현재의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라고 한다.
마사소이트 추장의 사후 왐파노아그 족의 추장 아들 왐수타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왐수타는 필그림의 정착민들은 아버지와 사이에 맺은 조약에 이의가 있다고 플리머스 정착촌을 방문하여 영국 당국에 요청했으나, 플리머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질병에 걸려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왐수타의 죽음으로 필그림 정착민들이 "필립 왕"으로 불렀던 왐수타 동생 메타코멧이 왐파노아그 족의 추장이 되었다.
1675년부터 1676년에 메타코멧 추장은 정착민이 왐파노아그 부족의 땅을 빼앗아, 삶의 터전인 숲과 사냥터를 앗아가고 왐파노아그 부족을 살해하고 여성과 아동을 노예로 팔았다고 주장하며 플리머스 정착촌을 공격하여 ‘필립 왕 전쟁’이 일어났다. 같은 알곤킨 지파인 니안틱 부족(Niantic), 펜나쿡 부족(Pennacook), 노셋 부족(Nauset)도 메타코멧 추장이 이끄는 왐파노아그 부족과 동맹을 맺고 참전했다. 플리머스 정착촌 식민지 사람은 정착촌을 보호하기 위해 총과 칼, 대포와 점화봉을 흔들며, 알곤킨 지파와 적대하고 있던 모히칸 족과 모호크를 아군으로 끌여들여 왐파노아그 부족을 습격해 싸웠다. 이 전투에서 600명의 백인 정착민과 4000명 이상의 인디언이 희생되어 죽었다. 메타코멧 추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왐파노아그 족은 학살되었으며, 메타코멧 추장의 아내와 8살 아들은 버뮤다에 노예로 팔려갔다. 또한 메타코멧 추장의 시신은 여덟갈래로 찢어 두개골을 창으로 꿰어 정착민들의 마을에 장식하였다. 1620년에는 약 5,000명으로 추정된 왐파노아그 족의 인구는 필립 왕 전쟁 이후 약 400명으로 격감했다.
2000년을 기준으로 왐파노아그의 인구 통계는 2,336명이다. 다른 부족의 인디언과 백인, 흑인의 혈통을 잇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이 마서즈 빈야드 섬의 와툽파(Watuppa) 왐파노아그 거주지에 거주하고 있고, 외에도 케이프코드의 매쉬피(Mashpee)에도 왐파노아그 족 마을이 있다.
왐파노아그 족의 이름은 "백인에 의한 왐파노아그 족 학살의 역사를 기억하라"라는 슬로건 아래, 백인에게 중요한 기념일인 "필그림 파더스 도착 기념 감사제"에 대항하여 같은 날 항의 운동을 펼치는 "미국 애도의 날"(National day of Mourning)도 유명하다. 이 "미국 애도의 날"은 왐파노아그 족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뉴잉글랜드 아메리카 인디언 협회" 종군, 왐수타 프랭크 제임스(Wamsutta Frank James)에 의해 1970년에 시작되어, 그의 사후에도 이어져 매년 실시되고 있다.
2. 성경적 추수감사절의 역사와 의미
1)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
맥추절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 추수가 끝날 무렵 가장 좋은 것들로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그 해의 첫 수확에 대한 감사제였다(출 23:16, 34:22).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 가나안에서 보리의 첫 수확을 하고 맥추절(오순절)을 지내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2) 성령강림절(오순절 / Πεντηκοστή / Pentecost Holiday)
맥추절이 오순절이 된 것은 구약의 맥추절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신약의 새로운 절기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의미로 성령강림절은 추수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첫 추수를 시작하신 것이 된다(고전 15:20, 약 1:18, 3:17). 동시에 제자들은 보냄을 받은 추수할 일꾼이 되어 이 땅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추수할 일꾼들이 모여 신약시대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교회는 추수의 사명을 갖게 되었다(마 9:37-38, 눅 10:2, 요 4:35, 약 5:4).
3) 초막절(장막절, Feast of Tabernacles)과 수장절(Feast of Ingathering)
추수감사절은 추수한 것을 곳간에 쌓고 이것을 감사한다는 측면에서는 구약의 수장절의 의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칠 일간 초막에서 지내며 출애굽 때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초막절(장막절)과 이어진다(레 23:34, 신 16:13, 16, 31:10, 대하 8:13, 스 3:4, 슥 14:16-19, 요 7: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며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지내야 했던 광야의 삶은 오늘 우리의 삶과 같다. 그래서 그날을 기억하며 풍성한 곡식을 수확하고 저장했던 수장절에 초막을 짓고 광야의 삶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추수감사절을 통해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를 드려야 한다(행 7:38).
3. 한국교회와 추수감사절
한국교회에서 감사절을 지키기는 1904년부터다.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의 제의로 한국교회에서도 감사일을 정해 지키기로 하였다. 우선 다른 교파 선교부와 협의하여 그 날짜를 정하기로 하고 우선은 11월 10일을 추수감사절로 선정하여 장로교 단독으로라도 지키기로 하였다.
그 후 1914년 각 교파 선교부의 회의를 거쳐 미국인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한 매년 11월 제 3주일 후 3일(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하여 예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모아 총회 전도국에 보내 전도 사업에 쓰기로 하였다.
그 후 수요일을 일요일로 변경하여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계 일각에서는 한국농촌의 실정에 맞는 시기인 중추절(추석)을 전후해서 한국교회다운 추수감사절을 새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이를 시행하는 몇몇 교회와 교파도 있다.
결론
하나님의 구원에는 귀천이 없다. 누군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 누군가는 그 감사의 날이 애도의 날이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진정한 감사 절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지켜지는 추수감사절을 통해 소외된 사람에게도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출 20:17, 신 5:21, 롬 13:9).
더 나아가 이 땅에서의 삶이 광야의 삶이라면 분명한 것은 성도에게 약속으로 주어진 ‘본향’이 있다(히 11:14-16). 우리가 가야 할 약속의 땅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이 땅에서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절기이며 동시에 영광스럽게 주어질 약속의 땅을 소망하며 고백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적인 추수를 허락하셨으니 또한 영적인 추수도 허락하셔서 신실한 추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한다(마 9:35-38). 그래서 추수감사절은 ‘약속의 땅을 소망하며 감사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히 11:9, 벧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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